항일의 유서깊은 마을 금곡을 찾아서
李光仁 朝鲜族足迹
2021年07月24日 15:57 听全文

금곡 3대 아래 원 성암촌 어구 길가에 세워진 금곡촌렬사비 새로 수건되여
항일의 유서깊은 마을 금곡을 찾아서
그제날 화룡현 덕신사 쇠골(오늘의 룡정시 덕신향 금곡촌)은 연변치고도 이름난 항일활동구역으로 소문 높았다. 일찍부터 항일의 불길을 지핀 이곳사람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일본침략자들과 굴함없이 싸웠다. 100세대 가량밖에 안되는 쇠골의 여러 마을들에서 40여명의 혁명자(외지 사람 포함)가 이곳에서 희생되고 30여 세대가 불을 맞았으니 그 정도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수건중에 있는 금곡촌 새 렬사비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정녕 잊을수 없는 유서깊은 항일의 고장, 지난 80년대 초에 금곡을 처음 찾아보았다지만 40년 세월이 흐른 뒤여서 아리숭하기만 하다. 마침내 다시 기회가 오고 올해 2021년 5월 18일 오랜만에 금곡을 찾아보았다. 원 룡정시 인사국 정두길 국장님과 김철씨 동행으로 금곡행에 올랐지만 당지 안내자를 찾지 않은데서 금곡3대에 위치한, 수풀로 덮혀버린 옛 혁명렬사비를 겨우 찾아 보았을 뿐이다.

금곡3대 수풀속에 가리워진 원 금곡촌렬사비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산기슭 수풀을 헤치고 찾아 본 금곡촌 옛 렬사비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쉽게 찾은것이 아니였다. 금곡3대 주변에 옛 렬사비가 있다지만 골안따라 오르고내려도 렬사비는 보이지 않구. 그런대로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마침 기계밭갈이에 나선 중년 한족분이 보인다. 중년분은 저 산기슭이라며 위치를 알려준다. 그 위치 찾아 가니 과연 렬사비가 보이는데 렬사비 앞이나 주변은 나무로 덮히여 바깥에서는 알아볼수가 없는것.

모습을 드러낸 금곡촌 옛 렬사비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탄식이 절로 난다. 금곡촌 새 렬사비는 금곡촌 아래 옛 성암촌 구간에 세워지니 옛 렬사비는 찾아보는 분이 없을수밖에. 다행히도 새 렬사비를 세운후에도 원 렬사비를 그대로 두니 금곡촌에 이른 필자도 찾아볼수있는것이 아닐가.

금곡촌 옛 렬사비 오른쪽에 세워진 김호철렬사비. 옛 달라자구유격대 대장이구, 후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독립사 화룡3퇀 제1임 퇀장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장창호렬사비ㅡ채수항 등과 더불어 금곡촌을 첫 혁명화한 항일혁명가 (2021년 5월 13일 현지촬영)
7월에 다시 연변행에 오른 필자는 정두길씨 동행과 룡정서 생활하는 금곡출신의 옛 부녀주임 박춘금씨, 박춘금씨 조카 박상호씨의 안내로 세번째로 금곡답사길에 나섰다. 올해로 70대를 잡은 박춘금씨는 갓 중학교를 졸업한 19살 한창 나이에 금곡대대 부녀주임 직책을 맡은 분이여서 금곡의 이모저모를 자상히 알고있었다.

옛 금곡촌 부녀주임 박춘금씨 고향 금곡3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그날은 7월 12일.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덕신향 옛 성암대대 웃구간인 금곡 5대. 박춘금씨는 금곡대대부 마을 금곡3대 서쪽 령너머에 자리한 금곡5대를 옛날사람들은 솔밭장으로, 금곡 하촌으로 불렀다고 알려주었다. 금곡 5대 웃마을인 금곡4대 마을도 솔밭장에 속한 마을이란다. 안내자가 있으니 금곡5대와 4대 마을이 솔밭장으로 금시 안겨들었다.

쇠골 금곡 3대와 솔밭장 금곡 5대 사이 령마루에 위치한 솔밭장 유래 소나무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금곡5대서 금곡3대로 가자면 동으로 꽤나 높아보이는 령을 넘어야 했다. 령 정상부 산기슭에는 수령이 수십년으로 치다르는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있었다. 박춘금씨는 옛날 이곳엔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했다면서 그 소나무들로하여 금곡5대쪽은 솔밭장으로 불리였다고 이야기를 터놓았다.


금곡의 조선말 첫 이름 쇠골로 불리던 금곡3대가 보인다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왼쪽으로 솔밭장 소나무구간을 내리면 금곡 동쪽골인 금곡3대에 이르게 된다. 금곡3대는 옛날 대대부 마을이고 박춘금씨 옛집이 자리한 마을로서 금곡에서 소학교를 마친후 서쪽으로 4개 언덕인가 넘어 지신향에 가서 중학교ㅡ지신 연길현 12중을 다니였다고하니 중학교 다니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금곡3대 남쪽가 밭가운데 저 고목자리가 옛 금곡의 사립원동학교 자리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옛 사립원동학교 앞을 지키던 저 고목 불타버린 모습 그대로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인상적인 것은 금곡3대 마을이 옛 금곡 중촌 마을이고 금곡 먼저 우리말로 된 쇠골마을이라는 것. 이 마을 남쪽가에 옛날 사립원동학교도 자리하고있었다. 그 옛날 원동학교를 알리는듯 원동학교 앞마당이라는 곳에 불에 타다남은 고목 버드나무가 서고있고. 사립원동학교는 처음 금곡 상촌 구간의 신선데기에 있다가 중촌마을로 옮겨졌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마을로도 불리우고.

금곡 3대 북쪽가에 보는 금곡골안과 산. 저멀리 산은 사수평이라 하고, 산기슭과 산아래 낮다란 령사이 휘넓은 지대. 이 지대에 금곡의 상촌을 이룬 금곡1대와 2대가 있었구, 지금은 페허로 된 마을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금곡3대서 골따라 남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젯날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불타버린 마을터가 있다. 30여 세대가 불의 세례를 당했다는 중점마을이라지만 해방후 더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은 옛마을터이기도 하였다. 한데서 5개 생산대로 금곡대대를 이룬 대대 부름에는 속할수가 없었다.

저 산 오른쪽아래 언덕이 금곡3대서 자동으로 넘어가는 력사의 언덕으로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길따라 구불구불 낮다란 언덕을 톺아오르면 구릉지대로 휘넓은 구간이 뜨거이 맞아준다. 주변 산들은 서쪽으로부터 오봉산, 사수평, 신선데기로 이어진다. 첫 사립원동학교가 자리했다는 신선더더기는 이름모를 동쪽산아래 높은 더기를 이루고있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곳은 금곡2대가 자리한 구역이라지만 2대마을은 세월속에서 가뭇 사라지고 원경지를 지켜보는 벽돌집 한채가 댕그라니 서있다.

옛 금곡촌 항일부녀주임 김정숙렬사의 친손녀 박춘금씨와 박춘금씨 조카 박상호씨와 더불어 원 금곡2대 옛터에서 (2021.7.12)
서쪽으로 오봉산아래 보이는 언덕 동쪽아래가 상촌 금곡1대가 자리한 마을터. 이곳 마을도 세월속에 사라지고, 상촌으로 개척마을로 불리운 금곡1대서 서로 언덕구간을 넘으면 남북으로 골따라 앉은 옛 지신록장이란다. 며칠후 오봉산아래 옛 지신록장 쪽으로 지신록장과 금곡1대 사이 산언덕에 올라보아서야 직성이 풀린 나였다.
아는것만큼 보인다고, 올해 5월과 이달 7월의 세차례 현지답사를 통해서야 쇠골ㅡ금곡 마을의 상촌(개척), 중촌(쇠골), 하촌(솔밭장), 신선데기의 지리적위치를 더듬어낼수있었다. 관련자료에 따르면 그제날 화룡현 덕신사 금곡촌 개발은 청나라 함풍초년(咸丰初年)인 19세기 50년대 초반으로 알려진다.

옛 금곡2대 옛터에서 박춘금씨, 박상호씨, 정두길씨와 함께 (2021.7.12)
50년대 초반이후 두만강 이남 조선땅에서 살길을 찾아 온 조선이주민들이 한호두호 늘어나면서 금곡의 산협지대와 골안지대를 따라 상촌(개척), 중촌(쇠골), 하촌(솔밭장) 등 여러 마을들이 이루어졌다. 해방후 금곡의 여러 마을은 금곡대대로 되고 대대 산하에 5개 생산대를 두었다. 1대와 2대는 상촌 개척에 자리하고 3대는 중촌 쇠골에, 4대와 5대는 하촌 솔밭장에 자리하였다.
금곡 여러 마을들 형성이 이러하다면 그젯날 100세대 가량의 금곡 여러 마을들은 중공화룡현위 첫 소재지로, 중공달라자구위 소재지로 떠올랐다. 중공화룡현위 제1임서기 채수항, 중공화룡현위 제5임서기 김일환, 금곡 연길작탄 제조자 손원금, 중공금곡지부 부녀위원 김정숙 등 이름난 항일혁명가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오늘의 금곡촌 젊은 서기님과 함께 (2021.5.13)
금곡출신들인 중공화룡현위 제1임 서기 채수항, 중공화룡현위 제5임서기 김일환, 김일환의 어머니 오옥경, 김일환의 부인 리계순, 김일환의 조카 김선, 연길작탄 제조자 손원금, 중공금곡지부 부녀위원 김정숙, 중공달라자구위 농민협회 책임자 림철석, 후일 화룡3퇀 제1임 퇀장 김호철, 후일 화룡현유격대 전사 양철운, 후일 화룡현유격대 녀전사 김정옥 등 인물전기들도 모두 필자의 소행이 아니던가. 물론 김일환과 리계순, 손원금 등 전기는 수십년의 꾸준한 연구가운데서 다시 정리하기는 했지만.

새로 수건된 금곡촌 혁명렬사비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이제 남은건 연길작탄으로 알려진 금곡의 옛 수리바위 동굴을 찾아내야 하려니 오봉산 남쪽아래 10킬로 정도를 이루는 알미대 골안 현지답사, 금곡대산 동쪽너머 개산툰진 자동 채수골 현지답사길에 나서야 하리라, 금곡은 손저어 날 부르고있다...

소나무속에 일어선 금곡촌 새 혁명렬사비 (2021년 7월 12일 현지촬영)
2021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