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무더위속

太昊 2024. 10. 30. 13:22

무더위속 찾은 연두봉 항일련군밀영 옛터
李光仁 朝鲜族足迹
2021年08月03日 08:58 听全文


우리가 찾고저하는 연두봉, 우린 끝끝내 자동 채수골의 연두봉 바로아래에 이르렀다. 쨍쨍 땡볕은 해빛아래 잠시도 서있기 어려워...

무더위속 찾은 연두봉 항일련군밀영 옛터

1

오늘은 2021년 7월 17일 토요일, 구름이 많은 편이나 삼복기간의 31도 고온이어서 무척이나 무덥다. 하건말건 오전 8시 20분 룡정시가지를 벗어난 산야용 越野车는 거침없이 두만강변 개산툰진 자동으로 달린다. 운전사는 원 룡정시 세무분국 최국장님이고 동행안내자는 원 룡정시 인사국 정두길 국장님.


연두봉 항일련군밀영은 바로 이런 태고연한 수풀속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승용차는 얼마후 룡정시 덕신향소재지 구간을 지나며 완만한 올리막길을 톺아낸다. 령길에 올라서니 석문구간의 형제바위산과 석문, 석문에서 남으로 남으로 뻗어간 만징기골안이 환히 안겨진다.

만징기골안은 그젯날 안중근 항일지사가 권총사격련습을 하던 골안이라고도 하지만 골안 량쪽은 룡정시 덕신향 석문구간과 개산툰진 자동, 덕신향 금곡 사이에 위치한 높고높은 산이라, 운전사 최국장님은 언제인가 등산길에 길을 오껴 자동과 금곡사이 높은 산에서 고생하다가 만징기골안으로 떨어지던 이야기를 꺼내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가 찾아가는 연두봉 항일련군밀영 안내비는 채수골 연두봉아래 구간에 세워져

승용차 잠간사이에 석문 구간을 지나고 회경 구간을 지나더니 큰길을 내려 자동으로 넘어가는 촌과 촌 구간 길에 들어선다. 회경 남쪽령을 넘으면 개산툰진 자동구간이라 약속대로 자동촌로인협회 김광운회장이 기다리신다. 기다리는 길가는 마침 자동3대요, 옛날 부령촌이라 100여년 력사를 가진 우리 시인 윤동주 선조들 옛집이 손저어 부르는것만 같다.

“저 옛날 팔간기와집은 윤동주시인 선조들 집이 옳지요?”

“옳구말구요. 우리 이곳 로인들은 모두 잘 알고있습니다. 언녕 개인집으로 되여 보전되고있습니다.”

윤동주시인 할아버지네가 살던 자동 부령촌의 옛집 모습

나는 자동촌로인협회 김광운회장님과 이야길 나누며 윤동주 선조들 이야기로 즐거운 시각을 보냈다. 승용차는 다시 달린다. 서남으로 산기슭에 이르니 자동의 농가들이 줄지어 달려온다. 이전 자동6대로 불리우던 옛 후저동마을이다. 지난 80년대 중반과 후반 연변력사연구소 시절 수차 자동현지답사를 거치면서 자동의 여러 마을들과 당지 조선사람들이주사, 마을형성사를 손금보듯 잘 알고있은 터였다.


저 앞에 연두봉이 보인다

재미나는 이야기를 터놓으면 개산툰 팔프공장쪽 자동1대를 응달촌이라고 할때 자동2대는 리화동, 윤동주 선조들 삶의 자취 어린 자동3대는 부령촌이고 철길넘어 자동4대는 행화촌(해방전 개산툰 정동학교 자리), 서쪽 산밑마을 자동5대와 6대는 후저동, 자동3대와 6대는 5리쯤 떨어져 있다.

자동6대 구간을 벗어나 한참 나아가면 골안은 크게 두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골은 야동으로서 지신 금곡으로 넘어가는 20리쯤 늘찬 골안이고, 왼쪽골은 산너머 령너머 골안따라 두만강변의 삼합 강역으로 이어가는 40여리 긴긴 채수골이다. 채수골치기가 자동일대서 제일높은 연두봉 아래이고, 연두봉 아래에 5ㅡ6세대를 가졌던 옛 알미대 마을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이지, 항일의 유서깊은 연두봉아래 알미대 옛마을터를 찾아낸 기쁨


연두봉 옛 알미대마을 주변 산들


알미대마을 주변에는 지난세기 40년대 초반 자동과 관련되는 항일련군전사 강위룡이 산막을 가지고 활동하던 항일밀영지도 있었다지만 채수골치기에는 종래로 이르지 못한데서 구체지점은 모르는 나이지. 오늘의 현지답사 목적은 채수골치기라하는 금곡의 옛 병기공장 동굴을 찾는것이여서 잠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2



이미 룡정의 분들로 련락이 된데서 승용차는 거침없이 왼쪽의 채수골에 들어섰다. 채수골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골안 한가운데가 외돌배기(고석)이고 외돌배기 북쪽 산기슭 바위산에 동굴 하나가 있으나 수풀이 엄청 우거진데서 골안의 엄청 커보이던 외돌배기 바위돌이며 아무것도 보아낼수 없다. 그런대로 승용차는 골안길이 뭐냐듯 앞으로 달리는데  또 두골로 갈라지는 어구 길가에 “연두봉항일련군밀영”이라는 돌 안내비가 서있다.


일전 룡정시 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김동수님과의 통화에서 연두봉항일련군밀영 돌안내비를 룡정시 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에서 지난해 10월 세운것임을 알고있었다. 연두봉항일밀영 구간에 들어선 기분이 별멋이다. 승용차는 삼합쪽으로 이어가는 채수골 늘찬 골안길이 아닌 골안 북쪽골에 들어선다.


우리가 찾아낸 연두봉 항일련군밀영은 저런 무더위속 신고의 결과(정두길 옛 룡정시 인사국 국장님)


북쪽골은 조금 올라가다가 또 두갈래 길로 나뉘여진다. 오른쪽 길이 원길이라면 수풀속을 헤집는 왼쪽길은 풀로 덮히여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승용차는 내가 누구냐듯 씽씽 올라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연두봉 바로 밑까지 올라갔다지만 채수골 어구처럼 수풀이 우거져 무엇하나 보아낼수 없다. 김광운 로인님은 차에서 내려 찾고찾지만 고개만 가로 젖는다. 10년쯤 잘 되는데 아리숭하기만 하다는 로인님.


우리 안내자 김광운 회장님(왼쪽 1)과 우리 동행자들


그래도 로인님은 단념하지 않고 차를 돌려 아래 구간을 다시 찾아보자고하신다. 때는 정오라 뜨거운 불볕을 토하는 땡땡볕으로 걷기가 쉽지가 않다. 당금이라도 쓰러질것만 같다. 나보다 년장자인 정두길님은 내색을 내지 않고 앞에서 걸으신다. 깊은 감동의 시각시각이다. 그럴 때 길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던 김광운 로인님이 찾았다며 환성을 지른다. 그 소리에 힘입어 우린 무더위를 헤치며 기운차게 나아갔다.


강위룡막으로 불리우는 당년 항일련군밀영 옛터



김광운로인님은 서로 만나기도 바쁘게 수풀길 아래쪽을 가리키시며 내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 로인님이 가리킨 쪽은 무서운 풀숲이여서 길흔적이 도무지 알리지 않는다. 그런속을 헤치며 10여메터 나아가니 수풀길 아래 골물구간길은 골물로 파괴되여 엉성하기만 하다. 그 구간을 에돌아 산기슭으로 나아가니 김광운로인님은 찾았다며 기쁨을 토해낸다.


항일련군밀영의 구새목 돌들 여전해

산기슭 수풀속에는 남향집으로 인공돌벽을 이루며 10여메터 뻗은 산막터가 우릴 부른다. 돌벽 서쪽가에는 돌로 만든 구새목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 자못 인상적이다. 김광운로인님은 이 산막이 지난세기 40년대 초반과 중반 항일련군으로 활동한 강위룡막이라며 하신다. 김광운로인님의 덕분에 우린 모진 무더위속에서 끝끝내 연두봉항일밀영ㅡ강위룡막을 찾아냈으니 그 기쁨은 이를데가 없다.


강위룡막ㅡ연두봉 항일련군밀영을 찾은 이들



우리 민족 항일연구가인 나로서도 처음 찾아 본 강위룡산막이다. 강위룡산막과 산막에 깃든 항일이야기는 이제 따로 전문 보여드리기로 하지만 강위룡산막은 이윽토록 필자의 발목을 잡고 놓질 않는다. 이모저모로 현장사진과 기념사진을 남기면서 나중에 산막옛터를 떠나는 나는 자주 고개를 돌리였다. 우리 력사연구가의 마음이리라.

3



연두봉 연두봉...

이같이 연두봉아래 강위룡막을 찾았다면 연두봉아래로 향할 때 본 길가 숲속의 여러 옛 집터자리는? 처음 이 집터자리를 강위룡막이 아닐가 짐작하여 보았지만 강위룡막을 찾아낸 지금에는 필자앞에 그젯날 알미대마을로 생생 떠올랐다. 그래 알미대마을 옛터이지, 이곳 연두봉 동북쪽 아래에는 몇호 뿐이던 알미대마을 밖에 없었으니까. 강위룡을 받들며 항일을 지지성원하던 알미대마을이였지.


당년의 연길현인민정부에서 1961년에 세운 주급 연두봉 항일밀영 안내비는 원 모습 그대로 우리 앞에 나타나



승용차로 돌아온 운전사 최국장님은 우리 일행에게 몸소 갖고온, 스마트폰에 입력한 연두봉 항일련군밀영 옛 안내비사진을 보여드린다. 김광운로인님은 옛 안내비사진을 보시더니 저아래 길가숲속에 지금도 이 옛 안내비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말씀하신다. 와아, 또 하나의 채수골 발견이 우릴 기다린다.

찾고보니 연두봉항일밀영 옛 안내비는 연두봉 북쪽가와 채수골이 갈라지는 자그만한 언덕우에 있었다. 룡정시 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에서 길가에 연두봉항일밀영 돌 안내비를 세운 부근 언덕이였다. 하늘을 가리는 숲이 우거지고 풀들이 무성한데서 안내자가 없이는 아예 찾지를 못할 수풀속이지.



자치주급 문화유물보호단위인 "연두봉항일밀영"과 연변조선족자치주 , 연길현인민정부 1961년 1월 10일 세움 등은 헤아려볼수가 있었구


고마운 일은 인적이 끊긴 수풀속이여서 1961년에 그 시절 연길현인민정부에서 문물보호단위로 세운 세멘트 안내비는 어느 하나의 파괴도 없이 완정한 모습으로 우릴 반기는것. 검은 글씨로 된 글씨체가 가담가담 사라져 원 글씨체 전체를 보아낼수는 없지만 안내비 글체따라 연두봉항일밀영과 1961년 세움은 알아볼수가 있어 다행이라할가.





항일유적지 현지답사의 풍만한 결실안은 하루. 룡정시 개산툰진 자동촌로인협회 김광운로인 (올해 77세), 2009년부터 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한다는 회장님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연두봉 부근에 숨은 금곡 병기공장 옛터대신 연두봉항일밀영으로 알려지는 강위룡막을 찾아내고 1961년 연길현인민정부에서 문물보호단위로 세운 연두봉항일밀영 옛 안내비를 찾았으니 엄청 수확이라 하겠다. 게다가 필자의 력사지식으로 그젯날 연두봉밑 알미대 마을터를 확인하였으니 수확은 보다 풍만하구.




오늘의 연두봉 채수골 현지답사를 받들어나서면서 사전련락까지 도맡아준 룡정의 관련 부문과 관련 이들이 그지없이 고마운 마음이다. 이제 늦가을 락엽이 지는 철에 사방이 환히 보이는 철에 다시 연두봉과 채수골 현지답사를 벌리며 금곡 병기공장 옛터를 찾을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후더워난다.

아아 연두봉아, 아아 채수골아, 연두봉과 채수골에 깃든 항일의 옛터와 항일의 이야기 우리 찾아 내리라! 세월아, 연두봉과 채수골 항일이야기 길이길이 전해 가시라!



2021년 7월 17일, 연길에서






연두봉 항일련군밀영 옛터와 수림속 1961년 옛 연두봉항일밀영 안내비를 찾은 우리



2021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