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1937년
혁명의 어머니
- 부녀주임 김인수어머니에 대하여
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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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8월, 그가 북경에문갔을 때였다. 변강의 한 소수민족 으로서 전국부녀대표대회주석단에 앉게 되였다는 점만으로도 가 슴이 뻐근한데 모주석을 뵈울수 있으리라는 은근한 기대로 하여 그는 런며칠동안 도시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당년 칠순이 훨센 넘었으니 한생 두고 오매불망 뵙고싶던 모주석을 이제 뵈면 처 음이자 마감일것이니 기어이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야 원이 없 겠다고 벼르고 또 별렀다. 헌데 벼린 도끼 무던다고 풍편에 듣 자니 모주석께서 그무렵에 외지로 나가셔서 만나뵐가망이 없으라는것이였다. 그는 무릎을 치며 맹랑해하였다. 이제 래일이 면 회의도 마감이요 회의가 끝나면 돌아가야 할것이니 이제 못 보면 내 평생에 그 어른을 뵈옵기는 다 틀린 일이라고 락심해하 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부녀대표들을 회견하려고 모주석께서 래일 비행기로 오신 다!》이 기별은 만장의 폭풍을 일으쳤다. 환성이 터졌다. 김인 수어머니도 갑자기 어린애가 된듯 손벽을 치며 풍퐁 뛰였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북경의 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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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따가왔다. 말랑말랑한 포도송이가 무겁게 드리운 중남해의 담벽가에서 그들은 모주석을 기다렸다. 그는 자기 여성의 행복 도 저 포도숭이마냥 밝은 해별아래 무르익어가는것만 같았다. 《오신다!》소리와 함께 모주석께서 나타났다! 환한 얼굴, 인자하신 그 웃음, 온전한 걸음걸이 어머니는 마치도 눈부신 태 양이 자기에게 안겨오는듯 황홀하여 남들이 그리 치는 박수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가슴이 찡하더니 앞이 흐려졌 다. 모주석께서는 가까이 오셨건만 그이의 웃음 민 얼굴을 더는 똑똑히 불수가 없었다. 주름 깊은 두불에 뜨거운 이들이 하염없이 이 굴러내렸다. 마음껏 흘려보자, 그는 흐르는 눈물을 씻을념도 하지 않았다. 풍랑많은 생애, 기구한 전생에 간장이 녹이빠지는 비통한 고비고비를 넘을 적에도 눈물 한방울 떨구지 않았던 강인 한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던가?! 기쁨의 눈물은 옷섬을 척시는데 기나긴 한생의 가지가지 일들이 흐려진 눈앞을 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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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20년대 초기 그의 일가가 혁명활동에 나선 맏아들 동규를 따라 왕우구에 이사했을 떼 일이였다.. 싸락눈이 부들부들 내리는 어느날, 갑자기 동네어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스레 나더니 삽시간에 마병들이 김인수어머니네. 집을 맹 둘리짜고는 꽥꽥소리를 질렀다. (이년들 당장 나오더라! 어머니와 맏며느리는 애기를 업은 채 맨발로 끌려나갔다. 놈들은 애기를 업힌채로 두사람을 바줄 로 두엄지손가락을 열십자로 매서 학교 대들 보에 달아매고 랑쪽 에서 사정없이 올리 박았다. 《네년의 아들이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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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편이 공산당이지? 》
몇번 안막아서 코와 입에서 선지피가 팔팔 쏟아졌다. 그려 자 놈들은 장감에 피가 묻는다고 이제는 채찍으로 종아리를 후 러쳤다. 그러자 장만지가 터지고 가죽에 살점이 척척 묻어떨어 졌다. 며느리는 너무도 이를 악물어 이발이 다 부려졌고 어머니 는 턱이 다 처져 늘어났다. 하지만 놈들은 오직 한마디《 모른다!》는 말밖에 아무 단서도 잡아내지 못하였다. 문초가 심할수록 놈들을 노려보는 어머니의 눞에서는 불이 활활 타올랐다 이때였다. 뜻밖에도 밖에서 아들이 붙잡혀들어왔다. 어머니 는 가슴에서 철령 돌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놈들이 바줄을 툭 놓으니 어머니와 며느리는 허공에서 뚝 멀어져 정신을 잃고말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놈들은 포승지은 동규를 수레우에 올려앉히고있었다. 어머니는 허둥지둥 달려가 아들의 어깨무에 솜옷을 걸쳐주었다. 허나 무도한놈들은 그것이 얄밉다고 총탁을 로 어머니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어머니는 외마디소리 로 원수를 저주하며 수레뒤에 푹 꺼꾸려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 시 일어난 그는 아들을 싣고가는 수례위를 맨발로 5리나 따라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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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로부터 유격구에 대한 원수들의 토벌은 날로 우심해지 고 놈들의 피비린 탄압하에 혁명활동은 갈수록 더 간고해졌다. 하여 혁명의 어려운 시련이 닥쳐왔다.. 선참 나선 만아들의 위를 따라 둘째아들 강혁이도 나섰다. 그렇다 할만한 단서를 잡지 못한 놈들은 동규를 감옥에서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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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수밖에 없었다. 동규가 산으로 들어가자 광혁이가 이어 중 대장책임을 지고 자위대를 령솔하였다. 동규네 유격대원들이 연 집강과 남양촌을 치고 총 여덟자루와 탄약을 탈취해온 이름날이 였다. 말을 탄 왜놈들의 지휘밑에 괴뢰군과 경찰놈들이 마을에 까맣게 밀려들더니 회의를 하겠노라고 온 동네 남녀로소를 학교 마당에 불러들였다. 아침부터 발갈이를 하고있던 광혁이도 불들 려왔다. 우훈 무서 을 에드 이 제 동네에 있던 주구놈의 고자질로 13명의 청년이 당장에서 묶 이여 뒤골안으로 끌려갔다. 이윽하여 뮤이여간 청년들은 보이지 않고 말탄놈들만 되돌아왔다. ◦ 김인수어머니는 놈들이 내려온후 허둥지둥 골짜기로 달려갔다." 이리저리 쓰러진 피투성이사람들속 에서 그는 광혁이를 발견하였다. 어머니는 정신이'아찔하였다. 아들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수없이 날창에 찔리운 자리에서 는 벌건 선지피가 쿨쿨 솟아났다. 어머니품에 안긴 광혁이는 돌 같은 주먹을 내저으며 <이 원쑤들! 이 원쑤들!> 하며 부르짖었 다. 어머니는 도랑물에 가서 찬물을 머금어다 물찾는 아들의 입 에 떨귀주며 복수를 맹세하였다. (광혁아, 이 에미의 숨통이 붙 어있는 한 네 원쑤는 곡 갚고야말테다!) 이때 통신련라을 갔던 셋째아들 충인이가 달려왔다.
《형님, 피를 헛되이 흘리지 않을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형님의 뒤에는 충인이가 있습니다!》
그날 밤 추도식을 거행하기전에 광혁의 몸을 씻으며 보니 전신에는 날창에 찔리운 자리가 일혼한곳이나 되였다. 어머니는 피타는 가슴을 치며 하늘을 우러러 원쑤를 저주하였다. 이 참상 을 본 동네사람들도 비분에 넘쳐 이를 갈며 기어이 원쑤를 감고 야말겠다고 맹세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피옷을 간직하고 복수의 길에 나셨다. 허 리에 작탄이며 단도 그리고 포숭을 차고 어린애를 업은채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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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받기 시작하였다. 생사결단하고 나선 그에게는 세장에 무서울 것이란 없었다. 미궁에 직위대원으로 된 어머니는 남성들 을 따라 동에 번쩍 저에 번쩍 하며 싸웠으며 로두구경찰서습격 에도 참가하였고 백조구 고개 매복전에서도 출중하게 싸웠다. 이때 맏아들 동규는 유격대 중대장으로 활약하였고 김인수일가는 제가끔 자기가 소속된 조직을 따라 산지자방으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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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시련의 나날이 닥쳐왔다. 혁명의 어려운 나날이 계 속되여 식량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재난은 첩첩하여 줌취기조차 어려웠전만 천번을 넘어지면 만번을 일어서는 영웅적 기개로 어머 니는 혁명을 위하여 물결을 헤아리지 않았다. 1933년 김인수어머니는 남골 번개둥부리회 주임사업을 맡게 되였다. 이 무렵 가장 어려운 것은 식량문제였다. 유격대에 직랑 을 공급하는 문제도 난사리니와 밤낮 토벌에 쫓기우다보니 빈손 쥐고 나았을 유격구인민들을 먹여살리는 문제가 더욱 국난이였 다. 이런 형편에서 식량은 곧 생명이였고 한 알의 식량은 한방울 의 피였다. 백색구로 식량공작대를 보내면 절반도 살아오다마나 했고 잔에 먹을만한 풀뿌리 나무껍질도 캘만한건 다 개여먹고 벗길만한건 다 벗겨먹었다. 련 몇끼를 맹물만 끓이는 집집의 가 마를 들여다보는 부려주임으로서의 어머니의 마음은 아프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일제원추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하여 유격 구인밀들은 고난의 나날을 웃으면서 보냈다. 1934년 겨울 왕우구인민들을 토벌을 피하고 식량난을 해결 하기 위해 돈화현 쌍하진으로 옮겨가게 되였다. 기는 도중 어머니는 자기의 배낭에 조금 남겨둔 비장미를 병자와 보약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는 사흘동안 내내 눈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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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먹으며 걸었다. 놈들의 문초에 무릎뼈가 비틀어지고 발목이 어기여 걷기 힘든데다가 런 며칠 국기를 하지 못해, 남보다 더 지친 어머니는 그래도 내내 우스개소리를 하여 사람들의 인기를 돋우어주면서 남의 애기를 업고 한손으로는 자기 아이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로인들의 팔을 끼고 걷군 하였다... 걸음걸음 이를 악물고 천신만고를 겪으며 산발을 넘어가 목 적지를 약 20리가랑 앞둔 곳에서 그들은 좁쌀 두말을 공작해가 지고 군중들을 마중나온 동규를 만났다. 걸음을 멈춘 군중들은 눈우에 푹푹 쓰러졌다. 어머니도 되는 문신할 막이 나지 않았을 4 군중들을 생각하고 아들을 도와 젊은이들과 다그쳐 죽을 쑤 어서는 군중들에게 먼저 놀림 차례로 나누어주었다. 피곤과 쌀넘 재에 취한 군중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 줄면 욕을 불것이라고 생 각한 그는 죽자발을 들고 군중들속을 돌아다니며 우정 너스레를 물었고 웃기기도 하면서 기운을 돋우어주었다. 이런 때면 항상 어려운 고비에 부르던 범벅타령) 이 은을 냈다. 오류 월 범벅은 호박범벅이요, 칠 월 범벅은 보리범벅이다. 우리네 범벅은 혁명의 범벅이요, 놈들의 범벽은 피땀의 범벅이다.. 혁명이 승리하면 찰 범벅 먹고요, 잘사는 놈들에게 쓰레기범벅 먹이게 " 이렇게 노래하며 우스운 시늉으로 너울러울 춤을 출라치면 끼꾸러졌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일어나 한바탕. 배를 그리알고 웃 고는 또다시 걷는것이였다. 군중들이 걷는 것을 보고서야 어머니 는 비로소, 자기도 대수 죽을 마시고는 이내 대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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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든 식구들이 모두 제각기 나가 싸우다보니 그의 곁에 는 네살잠이 젖먹이 금숙이말 남았을 뿐이였다. 칼도마우에 오른 목숨이 사자밥을 찾고 칠성판을 넘나드는 세월이여서 귀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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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귀한 자식답게 키워볼 겨를도 없었지만 그래도 단 하나밖에 안남은 제 살점이라고 별로 더 끔찍해보였으며 흩어진 식구들이 그리울수록 그 정을 깡그리 금숙이에게 쏟으며 지냈다.. 어느날 레일 토벌대가 올것이니 동트기전으로 삼도 만에서 장진으로 넘어가는 갈밭에 가서 숨으라는 련락이 왔다. 날밝기 전에 거기까지 닿자면 밤중에 떠나야 하였다. 그러나 의지로 언 감자운반을 며난 녀성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마을사람들은 진 종일 굶은채 저녁요기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근심을 하고 있는데 이슥하여 운반대가 돌아왔다. 돌같이 언감자를 대수 녹 여가지고 가자고 물을 지피는데 젖먹이 금숙이가 엄마, 나 먹 어도 돼? 하였다. 어머니는 인 감자 두알을 금숙이 손에 쥐여 주고 나머지는 군중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군중들을 재촉하여 떠 났다.. 동이 틀무렵에야 목적지에 당도한 그들을 거기서부터 키넘 는 갈받속을 모로 기여나가기 시작했다. 말과 같이 날이 밝자 놈들의 마병이 갈발 량권 산마루에 올라와 군중들이 숨은 갈밭 에 대고 사격을 시작하였다. 물대 하나 흔들거나 기침조리 한번 냈다간 놈들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마는판이였다. 군중들은 가쁜 숨을 죽여가면서 계속 기여갔다. 이때 팔순에 난 할머니 한분이 죽어도 되는 못 기겠다고 피더 버리고앉아. 도리 질을 하였다. 김 인수어머니는 애기를 업은데다가 할머니까지 부축해가며 계속 기 여가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얼마쯤 기다가 그가 처진 할머니 를 고쳐 끼려고 허리를 좀 편 순간, 앵하며 거뿌리를 스치는 총 소리에 이어 등에서 《엄마...》 하는 외마디소리가 나더니 금숙이 가 허우적거리였다. 어머니는 가슴이 섬뜩해났다. 순간 앞이 캄 감해졌다. 어린애가 잘못 돈줄을 안 어머니는 금숙이를 당금 내 려놓고불 생각이 간절했으나 얼핏 또 다른 생각이 번개쳤다. (숨 지는 순간 아이는 소리칠 것이다. 그러다 발각되면 이 숱한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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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그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에 왕청에서 있은 비극적인 교훈이 련상되였다. 한 아이가 우는통에 놈들에게 발 각되여 100여명 군중이 칼탕을 맞지 않았는가?>어머니는 포대기를 풀려다말고 버둥거리는 금숙이를 회 물 려서 겨드랑이에 깍 끼고는 그의 입을 저고리점을 꾸겨 틀어막 있다. 어머니의 가슴은 오리오리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부 드득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눈을 꼭 감고 얼굴을 외면하였. 다. 곁에서 같이 기던 한 젊은 녀정이 너무도 안타까와서 《어머 니 애 입에걸 좀 빼세요. 》" 하며 팔을 잡아당겼다. 어머니는 할 을 핵 뿌리치며 《이 갈밭에 100여명의 군중이 있소!" 》하고 입족 말로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계속 할머니를 끼고 기기 시작했다.. 이옥하여 버둥거리던 금숙이는 숨이 지고말았다. 금숙의 온 기를 지닌 따스한 피가 등을 적지고 치마를 적지며 주르르 흘려 내렸다. 금숙이 정작 숨이 지고보니 어머니의 가슴은 더욱 미여 지고 천지가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쏟아지는 피눈물을 속 으로 삼키였다
산허리에서 중인이가 수기신호를 하였다. 자기 있는데로 곧 장 올라오라는 것이였다. 어머니는 군중들에게 금숙의 죽음을 뵤 이지 않으려고 하물을 벗겨서 폭 씌워 업고 군중들을 지휘하여 산에 올라갔다. 산정에 이르자 중인이가 이 눈치를 알아챘던지 소리없이 어머니 뒤에 와서 나직이 말하였다. 《어머니 금숙이를 인주세요.》
넌 네 임무가 있잖느냐. 어서 가 네 일이나 봐라》.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 그아래 숯구이막으로 내려갔다. 그는 간신히 하. 불을 벗기고 어머니의 허리를 그리안은채 무릎을 꼭 가두고 숨 진 사랑하는 금숙이를 돌려안았다. 그 순간, 애기의 옷젚에서 먹다만 인 감자가 굴리 멸어졌다. 따라가는 , 어머니는 금숙의 시체를 안고 한동안 조리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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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안에 아이를 눕혀놓고 어머니는 주먹등으로 눈물을 쪽 문 지르고는 대결을 따라나섰다. 금숙이와 같이 원통하게 죽은 수 많은 아이들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그는 팅팅 불은 젖을 꽁꽁동여매고는 계속 군중을 지휘하여 나아갔다.. 토벌대가 물려간 다음 돌아오던 길에 어머니와 그의 남편은 소나무껍질을 넙죽하게 벗겨다가 애기의 시체를 짜서 양지쪽에 묻었다. 어머니는 명색뿐인 무덤우에다 팅팅 불은 두통의 젖을 짜멸구며 입술을 깨물면서 속삭이였다. 금숙아, 우리는 간다. 너는 젖을 먹고 에서 잘 자거라, 혁 명이 승리하기든 널 데리러 오마.》이렇게 그는 간고한 혁명의 나날에 일제와의 투쟁 속에서 아 들딸 빗, 며느리, 손자를 다 잃고도 승리의 그날까지 숨죽같이 절개를 지키며 굴함없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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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였을 때, 그의 슬하에는 막내아들 갑순이가 남았 을뿐이였다. 김인수어머니를 놓고 말하면 갑순이는 이 집의 유 일한 《씨동이》였다. 갑순이는 형님, 누나들의 빛나는 전통을 이 어 해방이 되자 선참으로 참군하였다. 이에 일부 동네 사람은 이 집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갑순이만은 슬하에 남겨두라고 권 유했으나 어머니는 단 한마디말로 《아니요. 제 형제가 피로씨 빼앗아온 승리의 열매를 보위해야지. 》"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갑순이를 전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집근심은 말고 네 형네처럼 나가 잘 싸워라!"》 이렇게 나간 마지막아들 역시 동북해방전쟁 시기에 오림하전투를 비롯하여 70여차례의 대소 전투에서 대공을 세우고 항미원 조전쟁에까지 나가 보람차게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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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아들이 희생되였다는 불행한 소식이 전해왔을 때에도 김인수어머니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몸은 이미 늙었어 도 혁명의 한생을 보랍차게 살아가리라는 군은 마음에서 그는 한때는 부녀주임사업도 하였고, 후기에는 독보조회장직을 말고 로인들을 조직하여 시사전전을 하는 한편 농업생산에도 적극적으 로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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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어머니는 모주석을 뵈온지 얼마 안되여 또 국경절 관례대에 오르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감격으로 울렁거렸다. 출 령이는 채색의 물결마냥 시위대럴이 지나갔다. 그들의 머리우엔 푸르튼 조국의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고 색고운 풍선이며 하얀 비둘기가 휠휠 날고있었다. 아,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조국 의 오늘을 위하여, 만백성의 행복을 위하여 내 아들딸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던가! 무수한 선렬들의 피로 개척한 빛나는 길을 따 라 조국은 지금 번영에로 달리고있다! 어머니는 총을 메고 구호 를 웨치며 나아가는 씩씩한 민병들속에 자기의 사랑하는 동규며 광혁이 그리고 충인이와 갑순이도 끼여있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속으로 《혁명! 혁명!》 하고 한평생을 외위오던 이 말을 되뇌여보았다. 그러먼그럴수록 이 말속에 형언할수 없는 그 무슨 깊은것이 담겨져있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속에서 지 나간 자기의 청춘이 되살아나는것만 같야 10월의 눈부신 태양아 래 은빛나는 귀밀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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